오늘은 학문 연구 및 국왕의 자문 기관 집현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집현전의 역사
중국에서는 전한, 위나라 이래에 설치되어, 당 현종 때 완비된 기관으로서 이곳에 학사를 두어 유교 경전의 간행과 서적의 수집 등을 맡아 보게 하였다.
한국사에서 집현전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은 1136년 고려에서 연영전을 집현전이라 개칭한 데서 비롯한다. 그러나 이러한 학술 기관들의 명칭은 이름뿐으로, 재상들이 겸해야 했던 대학사를 가리키는 말로만 사용되었고, 실제 학술 기능은 한림원이 담당하였다.
1356년 고려 공민왕이 문종 관제를 회복하면서 집현관과 우문관을 없애고, 수문전·집현전 학사를 두었고, 이후에도 간간이 폐하고 다시 설치했지만 역시 내용이 없는 것은 같았다. 조선에서는 1399년 집현전을 설치하여 경적의 강론을 담당하게 하여, 집현전이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1420년 확대 및 개편되어, 이전까지는 관청도 없고 직무도 없었으나, 이때부터 청사를 가지고, 경전과 역사의 강론과 국왕의 자문을 담당하였다.
훈민정음을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그래봐야 어디까지나 거든 것이고 세종의 주도하에 문종과 다른 왕족들이 주로 참여한 것이 정설이다. 아니라면 아무리 비밀리에 진행되어도 겸직인 윗 관직들을 제외한 최상위 보스인 부제학 최만리가 몰랐을 리가 없다. 다시 말해 세종대왕이 만들어 놓으면 집현전 학자들이 다듬었다.
집현전에 소속된 인물들의 이름을 보자면, 정인지, 최만리, 정창손, 박팽년, 강희안, 신숙주, 이개, 성삼문, 하위지, 최항, 양성지, 서거정, 노사신… 당대의 천재들은 다 모였다. 그야말로 드림팀.
1456년, 단종 복위 운동을 한 사육신을 비롯한 반대파 인물이 집현전에서 많이 나왔으므로 음력 6월 6일에 집현전을 파하고 경연을 정지시키면서, 집현전에 소장한 책을 예문관에서 관장하게 하였다. 그러나 세종 때와 달리 집현전의 실적은 저조했는데 심지어 소속된 문신들 중 벼슬에만 욕심을 내고 공부를 게을리 하며 농띠 부리는 문신들이 생겨서 1459년 이후 3품 이하의 문신으로서 젊고 총명한 사람을 뽑아 예문관의 관직을 겸임시켜 연구하게 하였으나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한편 1460년 음력 5월 22일에는 이조에서 사관 선임 규정을 강화하고, 경연, 집현전, 보문각은 직함이 비고 직임이 없으니 혁파하기를 청하였으므로 윤허하였다. 이로써 집현전은 완전히 폐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성종이 친정을 행한 이후인 1478년 음력 3월 19일 집현전에 의거해서 예문관 부제학 이하의 각원을 홍문관의 관직으로 옮겨 임명하게 하여 예문관을 분리·개편하였다. 대우를 극진히 하였으나 세종 때의 집현전에는 따르지 못하였다. 이후 연산군 때에는 흥청, 곧 기생의 집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집현전의 성과
조선 세조에 의해 폐지당하기 전까지 집현전은 수석인 장원 급제자가 16명, 2등이 6명, 3등이 11명, 4등이 7명 등으로 전체 집현전 학자 중 절반에 가까운 46명이 과거에서 5등 안에 합격하는 등 그야말로 조선의 최고인재들이 모여있는 기관이었다. 때문에 조선의 집현전은 15세기 학술 연구의 큰 축이 되는 중심 기관이 되었다.
고제에 대한 해석과 함께 정치 현안이 되는 정책 과제들을 연구하며 여러 서적들을 참조, 당시의 현실에 맞는 사례들을 수집하고 정리
중국 사신이 왔을 때의 접대 방안, 염전법에 관한 연구, 외교문서의 작성, 조선의 약초 조사 등 다양한 연구와 편찬 활동 전개
왕을 교육하는 경연관, 왕세자를 교육하는 서연관, 과거시험의 시관試官,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史官의 임무 수행.
역사서, 유교경서, 의례, 병서, 법률, 천문학 관련 서적등 국가에 필요한 서적 편찬. 『향약집성방』, 『삼강행실도』, 『자치통감』, 『국조오례의』, 『역대병요』가 대표적. 그외에 수백 종의 연구 보고서도 편찬했다. 때문에 장기간 수행하는 과제가 부여되고 완수하는 양상이 많았으며 이에 일부에선 집현전을 조선의 학술/연구기관으로 꼽는다. 오늘날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집현전과 같은 기관의 필요성은 이후 몇몇 뛰어난 임금들에게 인식되어 집현전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성종대의 홍문관이나 정조대의 규장각이 탄생하게 된다.
집현전이 나오는 대중매체
문명 5
한국의 문명 특성으로 나오는데, 모든 전문가와 위인 시설이 매 턴 과학력 2를 추가로 제공하며 수도에서 과학과 관련된 건물을 지을 때마다 과학력을 얻는 것. 이 덕분에 연구가 미칠듯이 빨라서, 남들이 석궁 쏠 때 혼자서 총 쏘고 다닐 수 있다. 이 밖에 플레이어에게 선전포고를 할 때 세종의 대사에도 나오는데, 학문 연구 및 자문 기관이라 조언이나 자문 정도는 몰라도 선전포고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 현자들이 모이는 집 이라는 기관의 이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 의회같은 성격으로 해석한 듯.
Europa Universalis III
한국의 Decision에 나온다. 능력치는 존재 가치가 없는 수준. 문화력을 0.01씩 증가시켜주는 정책인데, 사용할 때 드는 50두캇이 3.142배는 더 아깝다. 왜냐하면 문화력이 정말로 남아돌기 때문이다. 어차피 영토가 작고 기술개발속도는 거북이라서 행정관이 나올 때마다 0.05문화력으로 갈아넣는데, 대체 0.01이 무슨 소용일까? 심지어 사용하는데 3행정관까지 소모되며, 영구적이지도 않다. 이쯤되면 에딧에 손이 가기 시작한다.
Europa Universalis IV
전작처럼 50두캇을 지불하나 효과는 매년 위신 +0.5에 게임종료까지 적용되게 바뀌었다.
오늘은 집현전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저의 역사 지식이 한층 더 쌓이는 갑진 시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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