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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한민족의 전통 가옥 한옥

by 자유롭고 싶은 영혼 2026. 6. 21.

오늘은 한민족의 전통 가옥, 한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한민족의 전통 가옥 한옥
한민족의 전통 가옥 한옥

한옥이란

한옥은 한민족의 전통적인 가옥이다. 한옥은 한반도와 만주의 자연환경에 영향을 받아서 형성되고 발전되어 왔으며, 이러한 건축의 발전은 한국인의 재래식 의식주와 생활 양식에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한민족 고유의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한옥이란 말 자체는 구한말에 문호가 개방되고 그에 따라 외국의 방식으로 이질적인 건축양식이 들어오면서 처음 생긴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한민족이 식민지 시기를 겪고 해방 후에는 산업화와 현대화를 거쳐, 전통적인 한옥이 서양식 건축물에 밀려서 오히려 소수가 되자, 한민족의 전통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을 부르는 단어로서 한옥이란 단어가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 한국의 건축 양식은 다른 나라와 비견하면 큰 차이가 있으므로 외국인의 시각으로 봤을 때 한반도에 건설되고 있는 한민족이 사는 주택도 한옥이라고 할 수 있다.

한옥의 역사

한옥은 석기 시대 막집, 움집같은 수혈식 구조에서 시작됐으며 역사 시대까지도 마한은 비슷한 형태의 주거가 이뤄졌다고 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가야의 고상 가옥, 만주같은 북부에서는 구들이 사용된 원초적 한옥 구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삼국 시대의 가옥은 경주 북군동 기와집모양 토기 같은 여러 유물이나 벽화 등을 통해 형태를 유추할 수 있다. 대부분 평민들이 살던 곳은 단칸집이지만 여러 기둥을 세워 지은 비교적 넓은, 현대인의 기준에서 가옥이라 부를만한 수준으로 발전했다. 이 시기 중국에서 기와와 단청이 전래되어 왕궁같은 상류층의 가옥들은 오늘날 흔히 떠올리는 기와로 된 화려한 가옥의 형태를 갖췄다. 대체로 고구려 등의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는 구들이 이어져 내려오고 열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창문과 문을 좁게 틀었다. 반면 비교적 따뜻한 남쪽에서는 대체로 그보다 개방적인 형태를 띄었다. 다만 이런 구조의 개방성은 위도에 따라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고, 국지적인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반도 남부에서도 경북 등의 산간지대에서는 바람과 보온에 신경을 많이 써 폐쇄적인 구조, 복잡한 평면, 작은 개구부 등의 특징을 가진 가옥이 많았다.타 지방에 살던 사람이 중부지방으로 이주하면서 그 형태가 중부지방에서 보이는 경우도 있다. 신라와 고려 시대에는 귀족 문화의 융성과 함께 매우 사치스러운 주택을 지었다. 신라 말에는 황동 등 금속 부착물로 집을 장식하기도 했고, 심지어 금입택이라 하여 황금으로 집을 덮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화려한 귀족문화가 극에 달해 고려청자로된 청와를 올리는 것이 유행했다. 이 시대에는 입식 생활을 하여 타일을 깔기도 했고, 단청을 칠하거나 복층 구조, 누각에 기단을 쌓고 난간을 설치하는 등 조선 시대와는 매우 다른 형태의 한옥 양상이 나타났다. 또한 풍수지리 사상의 전래와 함께 배산임수와 같은 건축 법칙들을 따르기도 했으며 이 시기 마을 유적에 따르면 온돌이 보편화되기도 했다. 물론 이 시기 하층민은 땅을 파고 지은 수혈식 초가집에서 생활했다. 조선 시대에는 사치를 백안시하는 유교 문화가 주류로 자리잡으면서 보다 검소한 주택 형태를 추구하게 되었다. 물론 고려의 영향이 남았던 전기에는 궁궐에서 청기와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실록에 남아 있으며, 경복궁 복원 사업을 위해 궁터에서 발굴 작업을 한 결과 다량의 청와가 발견되어 경복궁의 건물 다수가 청와 건물이었음을 입증하였다. 참고로 현대에 남아있는 궁궐 전각 중에서 유일한 청와 건물은 창덕궁 선정전이다. # 그리고 복층 구조를 지닌 집이 있는 등 조선 시대의 이미지와 상반되는 기록들도 상당수 있다. 지방에서는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한옥 고택들처럼 공간을 넓게 사용한 건물군으로 이뤄진 주택과 초가집 등이 있었으며, 한양의 사대문 안 도시나 마포나루 등 포구 등에는 북촌 한옥 같이 단일 건물이 ㅁ 자나 ㄹ 자로 꺾이고 꺾여서 공간 활용도를 높인 구조가 구한말 사진에서 확인된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정세권 등의 사업가들 영향으로 개량 한옥이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이러한 도시형 한옥들이 빼곡하게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서구식 건물이 들어서며 한옥은 본격적으로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이 시기 일본식 건축물과 근대식 건물이 대거 들어서면서 부산, 목포, 서울, 인천, 평양 등 대도시에서는 한옥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물론 과도기의 영향으로 양식과, 한식의 형태가 뒤섞인 한옥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해방 이후에도 한국 전쟁과 새마을 운동을 거치면서 기존 한국인의 주거 형태에 큰 변화를 거쳤고, 재래식 가옥들이 신식 가옥들로 대체되면서 한옥은 과거의 주거 형태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한옥의 구조는 여전히 한국의 주거생활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현대 한국의 대다수가 주거하는 아파트는 한옥의 구조를 받아들여 일본이나 서양권의 아파트와 다르게 거실을 대청마루, 안마당으로 재해석해 거실을 기준으로 방사형으로 방이 붙어있는 구조를 띄고 있다. 그 외에도 높이가 낮은 주택들은 담장이나 지붕을 검은색 기와나 파란색 기와나 빨간색 기와로 덮은 집이 많은 편이다.

한옥의 주거 형태

한옥은 신분제도가 짙었던 조선왕조 때 이르러서 계급마다 주택 선호방식이나 건축방식이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였는데 왕족이나 상류층 양반의 경우 신분과 남녀 그리고 장유를 구분하여 공간을 만들고 주거 공간을 상중하로 나뉘었는데 상 의 공간은 안채와 사랑채가 속하여 남녀 양반이 주로 사용하였고 중 의 공간은 중문간 행랑채로 양반을 보좌하는 청지기나 서기 그리고 집사 등이 사용했으며 하 의 공간은 대문 주변에 위치해 있는 행랑채로 주로 양반댁 머슴이나 노비들이 사용하던 점을 보아 사람 뿐만 아니라 한옥의 구조에 있어서도 신분제도가 큰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일반 평민의 경우에는 양반과 달리 장식적인 면보다 기능성과 안전성을 중시하여 쉽게 구할 수 있는 돌과 나무를 사용하고 벽에 짚과 흙을 발라서 적은 비용으로 방수와 보온의 역할을 할 수 있게 짓는 점이 특징이었다.

한옥의 지역별 특징

한옥은 한반도 지방의 기후나 성향에 따라 위치나 건축방식이 다른 경우가 있는데 추위가 잦은 북부 지방의 경우 외부에 불어오는 한기를 막아내고 보온을 유지하기 위해 방을 두 줄로 배열하는 겹집 구조와 지붕이 낮아보이는 것이 특징이고, 반대로 더위가 잦은 남부 지방의 경우는 자연바람이 통할 수 있도록 방을 한 줄로 배열하는 홑집 구조와 지붕이 높아보이는 것이 특징으로 지방마다 건축방식이 다른 편이다. 남부 지역이나 제주도같은 경우 배랑이 열려있고 통로가 개방되어 통풍이 잘되어 있는 반면 함경도나 평안도같이 북부 지방에 위치한 한옥들은 공간이 폐쇄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함경도식 한옥의 가장 큰 특징인 정주간은 겨울이 추워 마당 대신 실내에서 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 만들어졌다. 목수의 특징인지 시대의 유형인지 지역의 특징인지 확실히 서술해야 한다. 위에 적었듯, 남부지방이라도 바람이 많은 지방은 오히려 여기서 말하는 '북부'의 특징을 보인다. 남부지방, 북부지방이라기보다는 추운지방, 더운지방으로 구분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북부 해안지방과 남부 산간지방 중 어느 지방이 더 추울지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오늘은 한옥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우리의 건축 역사에 한 축을 담당하는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