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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한민족의 정체성 한복

by 자유롭고 싶은 영혼 2026. 6. 20.

오늘은 한민족의 정체성 한복의 구성과 세계에 알리기 위한 노력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한민족의 정체성 한복
한민족의 정체성 한복

한복의 구성

○ 저고리 : 

저고리는 한복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윗옷으로써 남녀 모두가 입는 옷이며, 신분의 위아래와 유행에 가장 민감하였다. 팔과 상체를 덮는 저고리는 그 부위에 따라 길, 깃, 동정, 고름, 소매 등으로 구성된다. 깃은 앞몸판에서 뒷몸판까지 연결되어 보통 깃은 목둘레를 장식하며 섶은 저고리의 좌우에 각각 달려 몸을 여미는 역할을 한다. 옷고름은 의복을 리본 형태로 묶어 정돈하는 목적이지만 후대에 갈수록 저고리의 길이는 짧아지고 옷고름은 점차 길어지면서 장식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동정은 의복의 관리면에서 세탁하기에 편리한 방법으로 이용된 기능적인 역할을 하는 부위로 저고리의 단정함을 결정하는 역할도 한다. 그 종류는 두 가지가 있다. 그 재봉 방법이나 소재에 따라 홑·겹·솜·누비 저고리로 구분되며 각 부분에 다른 색의 천을 쓴 데에 따라 민저고리, 반회장저고리, 삼회장저고리로 나뉜다. 여자 한복의 경우 저고리에 끝동이 있어 자수를 놓기도 한다. 남성의 저고리가 상대적으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면 여성의 경우 조선시대동안 급격하게 짧아져 19세기후반에 그 길이가 가장 짧아진다. 그러나 개량운동으로 근현대의 저고리는 좀 더 길어져 허리선 조금 윗선까지 올라온다. 이에 따라 고름도 좀 더 길어지고 넓어지게 된다. 이에 반해 남자의 저고리는 등 전체를 덮을 정도로 길고 고름도 긴편이었다.

 

○ 치마 : 

치마는 한자로 裳(상) 혹은 裙(군)으로 쓰며 한복에서는 아래옷을 가리키되, 여자한복에 한정된다. 저고리의 경우 성별에 관계 없이 입었지만 치마는 여성만에 한정됐다는 사실이 다르다. 고구려 벽화와 경주 벽화분을 대조해볼 때 고구려 여성은 치마를 먼저 입고 그 위에 저고리를 입었으며 치마 주변(허리춤)에 띠를 두른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치마를 입고 저고리를 입는 것은 고려시대전까지는 관습처럼 굳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고구려 시대에는 서구형처럼 황금비례를 추구했으며 통일신라 시대에는 긴 치마를 저고리 위에 입어 당나라의 형태와 아주 유사한 형태를 띠었다. 속치마는 치마와 비슷한 용도로 20세기 초, 즉 개화기부터 입기 시작하여 조끼허리에 달아 명주나 삼팔ㆍ옥양목ㆍ인조 등을 사용하였다. 겉치마와 다르게 조끼허리를 쓴 것은 이화학당의 미국인 교장 윌터의 지도에 따른 것이라 전해진다. 20세기 중반에 이르자 겉치마는 소매가 없는 웃옷을 겸해 위로 가슴을 덮게 되었으며 저고리를 걸쳐 입게 되었다. 한복의 치마는 그 착장법이 뒤여밈으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의상과 약간 다른 특징이 있다. 인도의 전통 의상인 사리는 치마를 두른 후 앞으로 묶으며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전통 복식인 케바야, 캄보디아의 삼포트 등은 허리 앞에서 묶어 앞에 혁띠를 착용하거나 앞으로 여미는 특징이 있다.

 

○ 치마 : 

바지는 한복에서 아래옷을 가리킨다. 꼭 여성이 입어서는 안 된다는 법은 없으나 대개 옷한복을 지칭하며 사실 한복이 아니더라도 청바지 등의 일반적인 옷차림을 가리킨다. 한복의 바지는 6세기까지 신분의 차이 없이 그냥 바지부리를 여맸으나 7세기부터는 여매는것 대신 선으로 두르는 형태가 생겨난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겹고, 단고 혹은 단순히 고로 표기하고 있다. 겹고라는 의미는 겹바지임을 가리킨다. 바지는 복색, 재봉방법, 자수 등에 따라 홑바지, 가죽바지, 명주바지, 무명바지 등으로 이름을 구분한다. 한복 바지와 서구식 바지가 다른 점은 구성은 대칭하지만 앞뒤 중심이 사선이어서 움직일 때 편하고 또 한편으로는 착용자의 위엄과 사회적 지위를 나타낸다는 데 있다. 따라서 치수가 분명히 정해져 움직임에 제한이 있게 되는 양장 바지와 달리 여유로운 한복 바지를 입으면 움직임에 상대적인 불편함을 덜 느끼게 되어 좌식 생활에 편했다. 바지라는 용어는 "把持"라고 정인지가 기록한 것이 최초이며 왕과 왕비의 바지는 특별히 '봉디'라고 별도로 부르는 이름이 있었다.

 

○ 포 : 

포는 도포를 의미하는 말로서 외투의 일종이며 방한복으로서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예를 갖추는 자리에서는 꼭 입는다. 두루마기도 사실상 포의 일종이다. 포는 중국과 일본의 의복과 한국의 의복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여성의 의복을 보았을 때 한복은 저고리-치마를 기본형으로 하고 포를 걸치지만 중국과 일본의 옷은 원피스에 해당하므로 그 형상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여자 한복에 저고리가 있다면 남자 한복에는 외의인 포가 있었으며 이는 삼국시대 이후로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한복을 아우르는 전통이었다. 남자 한복의 선을 나타내기도 했다. 조선 시대의 남자 복식은 후대에 두루마기가 포를 대체했으므로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임진왜란을 기준으로 하여 보았을 때 조선전후기의 특징을 구분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 조끼와 마고자 : 

안에 덧대어 입는 저고리인 덧저고리와 흡사한 개념을 통칭하여 쓰는 말인 조끼는 흔히 서양 복식에서 베스트라고 말하는 것과 동일하다. 조끼와 마고자가 다른 복식과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조선 왕조 말엽에 유입되었다는 데 있다. 조끼는 서양 복식에서 들어온 것으로 한복에 주머니가 없어 소지품을 보관하는 것이 어려웠던 점을 보완하였다. 1897년 이후 조선 사회에는 서구 문물이 도입되기 시작한다. 전통 한복 문화는 한·양복 혼용으로 넘어가는 변화를 겪게 되어 실용성이 두드러지는 쪽으로 변화하는데 이 시기를 거치면서 양복에서 차용한 조끼가 등장한다. 조끼와 달리 마고자는 만주 지방의 옷으로 원래 이름은 마괘 혹은 마괘자였고 흥선대원군이 1887년 만주에서 돌아오면서 들려왔다는 이야기가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는 마고자로 추운 기후를 견딘 것으로 알려졌으며 보온효과에 더해 입기가 쉬워 백성들에게도 금방 퍼지게 되었다. 남녀 모두 입는 겉옷으로 남자들은 여름이 아니면 반드시 입는다. 처음부터 성별 구분 없이 입지는 않았으며 남자만 입던 것이 후에는 상관 없이 남녀노소 입게 변하였고 앞에 섶이 생겨났다. 형태상으로는 저고리보다 길이가 조금 더 길고 목 부분은 많이 파여 있어 깃과 동정을 따로 붙이지 않는다. 입는 순서로 보면 저고리 위에 조끼를 입고 그 위에 마고자를 입은 뒤 외출 시에는 두루마기를 둘렀다.

한복의 세계화의 노력

대한민국의 문화 컨텐츠가 아시아 국가들에 많이 소개되면서 대한민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복을 입어보는 행사나 한복을 사가는 경우가 상당히 늘어나고 있으며 비슷한 예로 중국의 신혼 부부들이 한복을 예단의 한 종류로 구매하는 경우도 적잖게 나타나고 있어 현지 업체와 한복 업체가 제휴하여 활동하고 있다. 한편, 문화관광부와 민간이 참가한 한복 패션쇼와 전시회는 전 세계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며 일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는 소재가 되기도 한다. 한복디자이너 이영희가 디자이너 이신우와 함께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프레타 포르테에 참가하면서 한복을 널리 알리는 전기가 마련됐다. 한복에 대한 인식이 없었기에 1993년 이영희의 패션쇼를 다룬 프랑스 일간지들은 한복을 일본 문화의 복식으로 오해하여 "기모노 코레앙"으로 표기했고 프랑스의 패션 전문가들조차 한국에 대한 낮은 인식 때문에 한복을 으레 기모노로 칭했다. 이후 한-불 수교 120주년을두고 2005년 4월 초 장 피에르 모쇼 대표이사가 서울을 방문한 자리에서 프레타 포르테 설립 50주년과 더불어 박람회 100회 기념 행사로 한복 전시회를 열겠다고 발표하면서 한복을 원용으로 삼은 여러 디자이너들의 전시회가 열려 한국 복식에 대한 이해를 드높이는 전환점을 맞게 된다. 실제로 한복 전시회를 본 뒤 2010년 세계적인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는 서울에 위치한 이영희 한복 매장을 직접 방문한 바 있다. 한복 패션쇼는 세계 각국에서 열리고 있으며 런던 주재 대한민국문화원은 "우리옷-배자"라는 제목으로 한복 전시회를 기획해 호평을 받았다. 한복 패션쇼는 민관 합작의 형태로 세계 여러 도시에서 열리고 있으며 디자이너 이상봉은 파리에서 1985년부터 태극기 이미지와 모시 소재를 선보였고 한복연구가 이영희는 싱가포르, 미국 맨해튼, 파리 등에서 한복을 주제로 한 무대를 꾸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여러 한복 디자이너들의 합동 무대 또한 홍콩, 런던 모스크바, 상하이, 아랍에미리트,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등지에서 열린 적이 있으며 뉴욕에서는 베네수엘라 출신의 유명 디자이너 카롤리나 에레라가 메르세데스 벤츠 패션위크 2011 봄/여름 컬렉션에서 한국의 저고리와 치마를 표현하여 갓을 하나의 소재로 소개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한스타일의 일원으로 한복과 한글, 한옥 등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해놓고 있다.

 

한복에 대한 인식

정부 차원에서 한복을 국가 브랜드의 일환으로 육성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과 달리 한복에 대한 대중의 인식 부족은 현재 한복을 계승하고 발전하려는 노력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명절에도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외면 당하는 한복의 현 주소를 타개하고자 하는 데에는 의견이 나뉜다. 개량하고 생활에 맞도록 변화를 추구하는 한복이 결국에는 한민족 고유의 의복 자체를 상실하게 한다는 주장과 현대인에게 외면 받지 않으려면 쇄신을 통해 한복을 입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양립하고 있다. 한편, 한복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교육 부족으로 한복에 대한 이해와 친밀도가 더욱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으며 일본의 현실과 종종 비교된다. 보통 원화로 천만 원을 호가하는 기모노는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예복이자 그 예우도 높아 성년식에 맞춰 기모노 맞춰 입기 교육이 이뤄지고 많은 사람들도 착용한다. 시치고산이라는 연중 행사에, 3세와 5세가 되는 남자아이와 3세와 7세가 되는 여자아이들은 예쁜 옷을 입고 부모님과 함께 신사에 참배하러 가는 일이 보통이어서 신사에서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오하라이의식을 해준다. 그러나 한복은 1년에 한 두 번 입는 정도에 그치는 데다 예복으로도 그 쓰임새를 잃고 있어 구매 의사조차 없는 사람들이 많으며 이에 따라 한복을 배울 사람들도 교육 받을 곳을 찾는 데 어려움이 있다. 또한 국내 소비자는 전통한복의 용도를 의례적인 용도로 많이 생각하고 있으며, 1벌 정도 소장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복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인식과 민간의 인식차를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도 있었다. 신라호텔 뷔페에 들어가려던 한복디자이너 이혜순 씨가 한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입장을 거부당한 것이다. 당시 신라호텔 측에서 한복과 트레이닝복이 출입금지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에 불을 지폈으며 급기야 이부진 신라호텔사장이 이혜순 디자이너를 직접 방문해 사과했으나 사태 진정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한복에 대한 인식 부족과 국민의 외면을 놓고 한복자체에 대한 퇴조와 더불어 사회일각의 무지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가 일어났다. 실제로 각대학 한국복식관련학과는 폐지되고 있으며 후임교수도 발탁되지 않는 것이 굳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한복, 드라마 혹은 영화에서 어여쁘게 나오는 한복, 우리 한민족의 상징 한복을 세상에 알리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분들의 노력이 있습니다.